1·2심, 유죄 … “점유권 있는데도 속아 이전”
대법, 파기 환송 … “재산상 이익 처분 아냐”
집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세입자로부터 오피스텔 점유권을 받았더라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유권을 갖고 있는 집주인이 세입자의 주거지 점유권을 편취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정의하는 ‘재산상의 이익 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사기,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피해자 B씨와 본인 소유의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텔에 대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전세 보증금은 1억2000만원이었고,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이후 A씨와 B씨는 계약 기간 2년 연장에 합의한 뒤 2020년 8월 계약해지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B씨는 2020년 9월 오피스텔에서 짐을 모두 뺀 뒤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A씨는 세입자에게 오피스텔 임차보증금 1억2000만원을 돌려줄 수 없는데도 “일단 5000만원을 송금해주고 7000만원은 다음에 송금해주겠다”고 속여 점유권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외에도 A씨는 약 30명에 달하는 피해자에게 32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A씨에게 사기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한 A씨 행위의 경우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 B씨가 추후 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말에 속아 보증금을 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A씨에게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말하는 ‘재산상의 이익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기죄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속여 갈취하는 범죄다. 이때 특정한 재물을 점유하면서 뒤따르는 사용권과 수익권은 재물과 별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그런데 오피스텔의 소유권이 A씨에게 있으므로 검찰 공소사실에 따른 범죄 대상은 ‘자기 재물에 대한 타인의 점유권’이 된다. 따라서 임차보증금을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으나 단지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집주인이 받은 것만으로는 사기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A씨는 별도의 부동산·사모펀드 투자 사기 범죄로도 함께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피해자 B씨에 대한 사기 부분은 파기돼야 한다”며 “그런데 위 파기 부분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나머지 부분과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됐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새롭게 형량을 정하게 된다. 김선일 기자